[기술금융 현장을 가다] (5·끝) 건창산기‥제철설비, 까다로운 미쓰비시도 품질 인정
제철설비 및 선박기계 전문 제조업체인 건창산기의 조직도를 보면 여느 회사와는 다른 특이점이 발견된다. 수익 창출에 큰 역할을 하는 영업부서가 전무하다는 것이다. 이 회사의 권재석 대표는 "주문에 맞춰 수출하기도 벅찬데 굳이 영업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"이라고 설명했다. 건창산기는 지난 20년간 일본의 미쓰비시에 제철설비를 전량 납품해오고 있다. 미쓰비시뿐만 아니라 하나다, 가와사키, JP Steel 등 일본의 유명 회사에도 공급 중이다. 이처럼 제품을 해외에 전량 수출하고 있는 탓에 국내에선 덜 알려진 회사이기도 하다. 권 대표는 1973년 건창산기의 전신인 동성중기에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한 뒤 1995년 회사를 인수했다. 동성중기 사장이 자식도 아닌 그에게 회사를 넘긴 것은 일밖에 모르는 권 대표의 성실함 때문이었다.
연탄찍는 기계를 만들던 동성중기는 연탄산업이 사양길에 들어서자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제철설비를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다.
물론 처음에는 숱한 난관에 봉착했다.
권 대표는 "미쓰비시는 1988년 동성중기로부터 처음 납품받은 뒤 제품의 70%가 불량이라고 통보했다"며 "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요구 해 '이렇게까지 해서 팔아야 하나'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"고 말했다.
건창산기는 반품과 보완을 거듭하는 진통 끝에 불량률을 점차 낮춰갔다.
5년 뒤인 1993년에는 미쓰비시로부터 검사를 위임받을 정도로 품질수준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.
현재 건창산기는 자체적으로 품질 검사를 한 뒤 일본 등에 수출한다.
권 대표는 "까다로운 미쓰비시의 눈높이 덕분에 기술력을 키울 수 있었다"며 미쓰비시에 고마움을 돌렸다.
그렇지만 건창산기도 2004년 엔저(엔화가치 하락) 현상과 함께 위기가 닥쳤다.
일본에 납품한 뒤 대금을 엔화로 받았던 만큼 원화 환전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었다.
권 대표는 "2006년까지 환차손이 32억원이 넘었다"며 "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"고 회상했다.
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전전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곳이 기술보증기금이었다.
심사를 맡았던 기보 관계자는 "기보의 보증자금 중 매년 평균 5% 정도 손해를 보는데 건창산기는 기술수준이 높아 손해 볼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지원을 결정했다"고 말했다.
기보는 지난해 건창산기에 경영개선을 위해 12억6000만원의 대출보증을 지원했다.
회사는 이 자금으로 우선 5축짜리 금속절삭기를 구비하는 등 생산설비를 전면 교체했다.
특히 철을 잘라내는 설비는 한 개짜리 축이 탑재된 40년이 넘은 것이라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렸다.
권 대표는 "내 인생을 건다는 각오로 살림집까지 담보로 내놓고 인수한 회사인데 주저 앉을 수는 없었죠"라고 회상했다.
그의 말 대로 회사는 위기를 딛고 지난해 135억원의 매출에 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.
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한 뒤 건창산기는 미쓰비시로부터 기술과 품질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이후 물품대금의 20%를 선수금으로 받고 있다.
기보 등에서 기술보증을 받은 자금 등 약 36억원의 부채를 서둘러 갚기 위해서다.
회사의 올해 목표는 총 매출 260억원에 당기순이익 20억원이다. 기보의 기술평가센터는 건창산기의 제철 설비 제조기술이 국내 최고 수준에 이른다고 평가한다.
권 대표도 "포스코 등에서도 기술 관련 자료나 자문을 구할 정도"라고 자랑한다. 여기에는 30년 이상 축적된 기술을 지닌 숙련 기술자들의 기여가 크다. 회사의 생산직 사원 60명 가운데 경력 30년 이상(50∼60대)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. 권 대표는 "3년 전부터 세대교체를 위해 젊은 직원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시키고 있다"고 밝혔다.
회사는 현재 제철과정에서 폐기물과 유해물질이 적게 생길 수 있는 설비를 개발하고 있다.
항공기 생산에 필요한 설비도 연구 중이다.
권 대표는 "2012년까지 독자 기술로 친환경 설비 개발에 성공하겠다"는 포부를 밝혔다. 부산=임기훈 기자 shagger@hankyung.com |